천하의 홍명보가 모시는 코치 이케다 세이고
오래된 기사 입니다. 홍명보호가 재영입한 한국축구의 멘토라는 생각이 들어 이 분의 기사를 읽다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식상한 멘트가 떠오르더이다. 여러분의 멘토로서 이 분을 감히 추천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춫처: 네이버 스포츠
[두서있는 인터뷰] 이케다 세이고 ① 천하의 홍명보가 모시는 코치
올림픽대표팀의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 (사진=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7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일궈낸 홍명보호의 중심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서 건너 온 이케다 세이고(52) 피지컬 코치는 ‘천하의’ 홍명보 감독이 “어렵게 모셔온 분”이라 언급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대하는 인물이다. 2009년 U-20 월드컵을 시작으로 3년 간 함께 해 온 그는 풍부한 경험으로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한국인 코치들에게 조언자 역할까지 맡고 있다.
세이고 코치는 역대 각급 대표팀 최초의 일본인 스태프다. 대표팀은 곧 한국 축구의 자존심이자 정수. 그 곳에 일본인 코치를 쓰겠다고 하자 주변의 반대가 심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이고 코치는 그의 전문 분야인 피지컬 트레이닝에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와 경험을 자랑했고 인성적인 면에서도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U-20 대표팀이 현재의 올림픽 대표팀으로 성장해 오는 과정에서 역대 어느 대표팀보다 체계적인 훈련과 치밀한 부상 방지가 가능했다.
본선 진출을 일궈낸 뒤 인터뷰를 위한 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세이고 코치는 “홍명보 감독이 원하는 축구가 연출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나의 역할이다”며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한편으로는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자기 철학과 한일 양국 축구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 홍명보의 삼고초려, 대표팀 최초의 일본인 코치가 되다
- 런던올림픽 본선에 가게 됐다.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다. 자식 또래의 어린 선수들과 3년을 같이 하면서 이룬 성과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금 선수들과는 20세 대표팀부터 함께 해왔다. 2009년에는 학생 신분의 아마추어들이었는데 올림픽이라는 목표를 보고 함께 달려왔다. 본선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기쁘기도 했지만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더 많이 들었다. 대표팀에서 일하는 최초의 일본인 코치니까 주위에서 반대가 있었다는 걸 나도 안다. 기회를 준 홍명보 감독에게 은혜를 갚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지 않겠나? 반드시 달성해야 할 임무였다. 나를 믿어주고, 한국에 잘 다녀오라며 등을 밀어준 오구라 준지 일본축구협회장을 비롯한 지인들에게도 은혜를 갚을 수 있었다.
- 홍명보 감독과는 처음에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궁금하다.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코치로 일할 때였다. 당시 요코하마엔 유상철, 안정환이 뛰었는데 통역 담당인 다카하시 켄토 씨가 홍명보 감독이 벨마레 하라츠카(현 쇼난 벨마레)에 있을 때부터 통역을 했었다. 그리고 그때 요코하마에는 일본 대표팀 주장 출신인 이하라 마사미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 라이벌 관계지만 양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선 손을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홍명보 감독과 이하라 마사미가 만나는데 다카하시 씨가 중간에 다리를 놓아줘서 같이 자리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나는 순간 느낌이 왔다. 그의 눈은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 미국 무대를 경험하며 세계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아시아 축구의 전체 레벨을 올리고 싶다는 큰 꿈을 피력했는데 나도 생각해왔던 부분이었다. 홍명보라는 사람은 월드컵에 4회나 출전했고 J리그에서 주장을 맡을 정도로 인간성도 검증됐다. 둘의 관계가 깊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홍명보라는 남자의 꿈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갖고 있는 것을 전하고 한국의 장점을 가져오면 양국 레벨이 올라가고 그것이 곧 아시아 축구의 발전이라는 동반자적 의식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인성이 나를 움직였다. 사회 각계의 유명 인사들이 그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홍명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건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 2009년 U-20 월드컵을 3개월 앞두고 홍명보 감독이 당신을 영입하기 위해 세 번이나 일본을 방문했다. 소속팀이던 우라와 레즈의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다.
처음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아카데미 총괄 책임자를 맡고 있었으니 팀의 미래를 생각해 반대했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이 계속 와서 3개월만 함께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천하의 홍명보가 자존심을 굽히고 세 번이나 왔다. 그런 마음을 보고 구단에서도 진심으로 와 닿았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대체 네가 어떤 사람이길래 저 홍명보가 고개를 숙이냐”고 할 정도였다. 나도 홍명보 감독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건 절대적으로 해야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악의 경우 팀을 그만두고라도 가겠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 오구라 준지 회장과도 상의를 했는데 그가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결국 우라와도 좋게 보내줬다.
홍명보 감독은 세 차례의 설득을 통해 세이고 코치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사진=연합뉴스)
2009년 U-20 월드컵을 위해 3개월 간 단기 합류했던 세이고 코치는 홍명보 감독과 함께 8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1년 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도움을 줬다. 결국 2011년에 대한축구협회와 올림픽대표팀 전임 코치 계약을 하면서 한국 축구 대표팀 최초의 일본인 코치가 됐다. 오구라 준지 일본축구협회장이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한국인 감독과 일본인 코치가 향후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될 선수들을 위해 함께 일한다는 건 한일 양국 축구 최초의 협력 프로젝트기도 했다.
- 전임 코치가 되면서 이전에 단기적으로 와서 도와주던 것과는 더 달라진 마음가짐, 자세를 갖게 됐나?
전혀 다르지 않았다. 계약 형태가 바뀌었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쏟을 수 있게 됐다는 차이일까? 정식 코치가 아니더라도 홍명보 감독과 팀에 대하는 방식은 한결같았다. 책임이 더 커진 건 분명했지만.
- 홍명보 감독과 함께 일하기 전부터 한국 축구와 인연이 깊었다. J리그에서 많은 한국 선수들과 함께 했고 2009년엔 황선홍 감독의 요청으로 부산에서도 일했다. 한국과의 인연이 계속되는 게 신기할 것 같다.
아버지께서 어렸을 때부터 재일교포나 한국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 깊고 훌륭한 사람들이니 그들을 옆에서 도와줘라. 한국과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런 조언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 와세다대에 진학을 했는데 고려대와 정기전을 가졌다. 당시 고려대에서 뛴 친구들이 이길용, 정용환이었는데 그걸 계기로 서로 교류를 했다. 원래 1학년은 원정 멤버에 끼기 힘든데 운이 좋게 난 1학년임에도 한국에 올 수 있었다. 그렇게 4년 간 오다 보니 한국 선수들과 더 친해졌다. 운명인 것 같다. 최근엔 일본의 주변 사람들이 교포 아니냐고 물어본다.(웃음)
- 한일 양국이 이전에 갖던 정서는 분명 유연해지고 있다. 하지만 양국 축구가 대표팀이란 정점에서 붙으면 역시 지고 싶지는 않다. 작년 삿포로에서 한국 축구는 완패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지금은 한국 축구가 바뀌려는 전환점에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건 J리그나 일본식 축구가 한국 축구에게 하나의 모델, 목표가 되고 있지 않나 싶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위험하다는 건가?) 일본은 점유율을 중시하는 축구인데 한국도 최근 거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축구에서 중요한 건 여러 전술 중 하나를 택해 골을 넣는 것이다.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골을 넣기 힘들어진다. 지금까지 한국 축구는 상대 볼을 가로채서 빠른 템포로 역습해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런 장점을 잃어가면서까지 볼 소유에 집착하고 있다. 충분히 전진할 수 있는데도 백패스를 한 뒤 패스로 전개하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현 일본 대표팀의 자케로니 감독은 빨리 압박하고 공격하는 축구를 원한다. 지금까지의 점유율을 중심으로 하는 축구로는 세계에서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얘기다. 그건 한국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무기 아니었나? 일본 입장에서는 정말 부러워했던 한국 축구의 보물을 버리려 하는 게 이해가 안 갔다.
- 코치이자 오랜 지인으로서 지켜 본 감독 홍명보의 진수는 무엇인가?
홍명보 감독은 감성이 뛰어나다. 20년 넘게 코치를 해온 나로서는 감독 초년생이 갖고 있는 축구에 대한 감이 이렇게 대단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확신이나 지식이라고 하기엔 부족했지만 본능이 있다. 이제는 여러 경기와 대회를 치르면서 그 감이 확신으로 바뀌어지는 걸 보게 된다. 감독은 경기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안 된다. 그러면 작지만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 냉정하고 차분한 사람은 시야가 넓어지고 주위를 잘 본다.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 그게 홍명보 감독이다. 예를 들면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감성이 없으면 진화하는 레벨이 느리다. 한 계단씩 올라간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두세 계단을 뛰어넘는 사람이다. 그게 경기를 이기는 힘이 된다.
■ 남미와 유럽을 자양분으로 한 세계적 피지컬 코치
세이고 코치는 유럽과 남미를 돌며 자신만의 피지컬 트레이닝 노하우를 완성시켰다 (사진=연합뉴스)
- 원래 축구 선수 출신으로 알고 있다. 피지컬 코치에 입문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현역 시절 부상이 많은 선수였다. 부상에서 복귀하면 다른 부위가 금방 아팠다. 당시 팀엔 트레이너 선생님이 없었다. 왜 자꾸 다치는지 자문자답을 하면서 컨디션, 부상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 게 계기다. 후루가와 전공(현 JEF 이치하라) 소속이던 29살에 십자인대가 끊어지면서 은퇴를 했는데 팀에서 코치로 남아달라고 제의가 왔다. 그때 일반 코치가 아닌 피지컬 코치로 남고 싶다는 뜻을 전했더니 팀에서는 ‘그게 뭐냐?’는 반응이었다. 피지컬코치란 개념이 유럽과 브라질에만 있던 때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닛산자동차(현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 브라질 출신의 마페이라는 피지컬 코치가 있었는데 그가 관두면서 닛산이 새 코치를 구해야 하는데 내가 피지컬 분야를 공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접근을 해왔다. 그러자 후루카와에서 “가지 마라. 대신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오전에 도쿄대학 연구실에서 피지컬 분야를 공부하고 오후엔 코치로 일하는 방식으로 1년을 보냈다. 이듬해에 일본 축구리그가 J리그로 전환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1992년부터 수석코치와 피지컬코치를 겸임하기 시작했다.
- 1994년 미국월드컵 때 브라질 대표팀과 동행했던 걸로 안다.
1992년 도요타컵에 브라질의 명문 상파울루가 왔다. 그때 피지컬 코치인 모라시 산타나를 만났다. 그가 나의 스승이다. 현재는 이라크 대표팀에서 지쿠 감독과 함께 하고 있다. 가시마 앤틀러스의 초대 감독인 미아모토 마사카츠 감독이 와세다대 시절 스승인데 그가 산타나 코치를 소개해줬다. 1993년 도요타컵에도 상파울루가 왔다. 그때 산타나 코치가 자신이 미국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피지컬 코치가 가게 됐다며 꼭 오라고 했다. 처음엔 “정말 가도 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는데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책임질 테니 오라고 했다. 거짓말처럼 월드컵 내내 브라질 대표팀과 함께 했다. 미디어에서는 브라질 대표팀에 왜 일본인이 있는지 신기해했다. 1995년에는 AC밀란으로 연수를 갔다. 브라질 대표팀에서 배워온 걸 일본에 전수하는 게 내 의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일본에는 독일에서 공부한 이들이 많으니까 그건 브라질의 생각일 뿐이라는 얘길 많이 했다. 그래서 유럽 방식도 배우고 싶었다. 빈첸조 빈코리니라는 피지컬 코치가 밀란을 맡고 있었는데 이탈리아 최고의 피지컬 전문가였다. 1993년 도요타컵 때 밀란이 왔는데 사전 연락 없이 그냥 찾아가서 부딪혔는데 그도 이탈리아로 오라고 했다. 1995년 당시 밀란은 조지 웨아, 로베르토 바지오 등 최고의 스타들을 보유한 팀이었다. 3개월 간 밀란에서 함께 했다. 그렇게 하면서 피지컬 코치로서의 내 자산이 만들어졌다.
- 세계적인 피지컬 코치 두 사람이 스승이라니 대단하다.
빈코리니 코치는 미국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의 피지컬 코치였다. 결국 두 명의 스승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만난 것이다. 나중에 연수 때 내가 브라질 대표팀에서 있었다고 하니까 이탈리아 대표팀의 훈련 메뉴를 모두 주면서 비교해 보라고 했다. 두 나라의 방식이 정반대였다. 미국월드컵 당시 경기 시간이 오후 1시, 2시였다. 한낮에 기온이 40도가 넘었다. 브라질은 더운 환경에서 해야 하니까 훈련도 그 시간에 맞춰서 했다. 연습경기는 120분 동안 했고 지구력 훈련 중심이었다. 반대로 이탈리아는 에너지를 온전히 유지해야 한다며 저녁에 훈련하고 스피드와 파워 훈련을 반복했다. 그렇게 정반대의 방식을 지닌 팀이 결승까지 간 걸 보고 ‘방법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일본에 맞는 피지컬 훈련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공부를 계속할 필요가 있어서 틈날 때마다 외국으로 나갔고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 유고슬라비아, 아르헨티나로 가서 시간을 들여 배우고 왔다. 나라마다 민족성과 문화도 다른 만큼 축구 훈련 방식도 달랐다.
- 처음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때와 현재를 비교하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했나?
20년 동안 경기 스피드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탈사커가 현대축구의 기본 이념이다. 포지션별 특징은 점점 줄어들고 이동거리와 스피드를 늘리기 위한 훈련에 초점이 맞춰진다. 무엇보다 당시에 비해 경기 수가 굉장히 늘어났다. 피지컬 트레이닝이 그 부분에 맞춰져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두서있는 인터뷰] 이케다 세이고 ② “유망주들의 J리그 러시 우려된다”
올림픽대표팀의 이케다 세이고 코치 (사진=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이케다 세이고 코치는 평소 자연체(自然體)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넓은 시야로 경기를 보고,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선 몸이 편안한 상태가 되어야 하고 그걸 위해 피지컬 트레이닝이 존재한다는 자기 철학이다. 단순한 워밍업, 체력 훈련이 아니라 실제 운동 중 필요한 자세와 사고의 교정을 통해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의 밑그림을 그려준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J리그로 가는 한국의 유망주들에게 냉철한 질타도 서슴지 않았다. J리그로 갔다는 그 사실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반성을 촉구했다. J리그와 일본 축구의 관습 안에 있는 문제점을 문제점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그 선수, 그리고 멀게는 한국 축구에도 손해가 된다는 충고였다.
■ 타고 난 홍정호와 노력파 구자철-김보경
- 팀에 처음 부임해 훈련을 시작할 때 어떤 부분을 강조하나? 워밍업을 굉장히 중요시 한다고 하던데.
피지컬코치는 사물을 보는 방법이 섬세해야 한다. 어떤 행동을 하기 때문에 몸의 기능에 영향이 간다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은 생각하는 방법만 조금만 바꾸면 많은 부분이 좋아질 수 있다. 집중하라는 걸 착각하면 안 된다. 사람 한 명만 보라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과 관련된 게 시야다. 넓게 보려면 몸이 편안해야 한다. 그걸 위해서 피지컬 훈련을 통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든 대응할 수 있다. 근육이 긴장되면 특정 근육 밖에 못 쓰고 혼란이 와 부상이 생긴다. 그게 한국 선수들의 단점이다. 근육의 긴장을 풀고 있어야 하고 그걸 위해 워밍업 과정이 중요해진다.
워밍업이란 게 아무 생각 없이 20~30분 운동장 도는 게 아니다. 첫째 목적은 부상 방지, 거기에 시야를 넓히고 몸을 편안하게 만드는 게 추가 목적이다. 홍명보 감독은 그 부분을 이해해준다. 워밍업을 이 정도로 하면 되겠냐고 하면 몇 분을 하든 상관없다며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대표팀은 시간이 많지 않지만 내 요청을 믿고 들어준다. 그게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인 신뢰다. 워밍업을 통해 편안한 상태로 훈련과 경기에 몰입을 하니까 자세가 틀려진다. 처음엔 볼만 보고 새우등 모양으로 쏠리던 선수들이 몸을 세우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자세가 안 좋으면 몸에 부담이 가는 부위가 많다. 자세가 좋아지는 것 하나로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 피지컬 훈련이라면 힘과 스태미나에 중점을 두는 걸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당신은 공을 이용한, 창의적이고 기술적인 훈련도 다양하게 시행한다. 한국 선수들이 그 부분을 잘 적응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처음엔 어린 선수들이 신선하다고 하면서도 훈련 중에 계속 생각해야 하니까 워밍업 단계부터 머리가 너무 아프더라고 하더라. 자기가 이미지를 만들면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공격수와 수비수는 같은 거리를 움직여도 피로도가 다르다. 포워드는 자기 생각으로 리드하지만 수비수는 상대에 따라 반응해야 하니까 그렇다. U-20 대표팀 시절 함께 한 황인우 트레이너가 “부상자 없이 대회를 맞이하는 건 처음이다”라고 얘기했다. 그때는 대부분 선수가 대학생이니까 한 달의 준비기간이 주어졌고 대비를 할 수 있었다. 지구력 훈련을 해도 여러 요소를 투입해야 한다. 우리는 운동장을 뺑뺑이 돌리지 않고 셔틀런도 안 한다. 그래도 90분 동안 체력이 떨어진 경우는 없었다. 늘 상대보다 많이 뛰었다. 올림픽 예선 같은 경우는 준비 기간이 짧으니까 고민을 많이 했다. 다행이라면 지난 1월에 훈련 시간이 많이 주어진 것이었다.
- 한국 선수들의 피지컬적 특징을 파악한 부분이 있다면? 같은 아시아권이라도 일본과는 다른 특징이 있을 텐데?
큰 틀에서 보면 일본 선수의 장점은 유산소와 지구력 능력이 높은 것이다. 단점은 무산소, 파워가 낮다. 한국 선수는 그 반대로 파워와 무산소가 높은 반면 유산소가 아쉽다. 그런데 지구력을 견디는 힘이 한국은 높다. 근육에 젖산이 쌓여도 버틴다. 그건 지극히 멘탈적인 부분과 연관이 되는 것 같다. 한국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강해 그걸 이겨내고 뛴다. 그게 양국 선수들의 신체적인 차이다. 나머지는 선수마다 개별적으로 차이가 있다.
워밍업 중 선수들의 자세를 교정하고 있는 이케다 세이고 코치 (사진=연합뉴스)
- 2009년 대학생이던 선수들이 이젠 모두 프로 선수가 됐다. 그 과정에서 자기 관리, 부상 방지 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걸 느꼈을 거 같다.
프로가 되면 명예도 있고, 자신의 성과로 인해 받는 돈도 예전과 달라진다. 꿈을 위해서 필요 없는 유혹을 정리할 수 있는 선수는 계속 기량이 늘어난다. 반면 자기 위치에 자만한 선수는 이제 올림픽대표팀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2009년에 처음 왔을 때 영양, 수면, 휴식에 대한 얘기들을 강조했다. 그걸 실행하는 건 온전히 선수들의 노력 여부다. 그때 가르침을 지금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아서 흐뭇하다.
- 피지컬적 특징이 남다른 한국 선수는 누구인가? 반대로 후천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특별한 선수는?
모든 선수가 각자의 장점이 있다는 걸 전제하고 싶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남아 있는 선수들이 바로 피지컬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고 받아들이는 게 좋은 선수들이다. 굳이 뽑자면 전자는 홍정호가 대표적이다. 정호는 축구 선수로서의 장점을 다 갖고 있다. 스태미나, 파워, 테크닉. 전술적인 능력까지. 후자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구자철이다.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친구다. 또 한 명은 김보경이다. 사람들은 김보경이 선천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는 노력파다.
■ J리그 진출 후 안주해버리는 유망주들 안타깝다
-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도 돕는 걸로 안다. 특히 J리그에 진출한 어린 선수들이 많은 자문을 구할 것 같은데?
솔직히 J리그로 가는 선수들을 보며 내 입장에서 거슬리는 게 있다. 일본에 가는 목적은 대개가 재정적인 이유 때문 아닌가. 연봉을 더 많이 받고, 서포터도 많고, 축구 하기도 좋은, 부족한 게 거의 없는 환경이라고 해서 다들 J리그로 간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뭘 하느냐다. 가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한국에서 갖고 있던 정신적인 강인함, 열심히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J리그에 진입하고는 안주해버리는 것 아닌가 싶다. 일본 지도자들은 선수와 동일한 시선으로 보려고 한다. 선수들이 훈련 과정에서 100%를 다 안 하는데 그걸 눈감아 주는 경향이 있다. 경기는 물론이고 훈련도 전력으로 다 하는 게 기본이다. 그건 한국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 그런데 일본에선 그게 느슨해진다. 지도자의 문제기도 하고, 선수의 문제기도 하다. 일본은 아프다고 하면 경기를 위해서 훈련은 쉬면서 하라고 한다. 그런 부분에 선수들이 기대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이건 극단적인 예인데, 경기 내용이 부진했는데 일본의 지도자들은 그걸 이해해주려고만 한다. 선수가 아이도 아니고 보챈다고 안아주기만 하면 안 된다. 100%로 할 수 없다면 훈련도, 경기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다. 2002년 1월에 한일올스타와 세계올스타가 경기를 했는데 아리고 사키 감독에 의해 피지컬코치로 지명돼 세계올스타팀에 합류한 적이 있다. 당시 로타르 마테우스가 그랬다. “난 한번도 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늘 경기장에 있었다.” 그것이 축구 선수다. 일본 축구는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다. J리그에 간 한국 선수들이 거기에 익숙해지면 한국 축구엔 마이너스가 된다.
- 예선처럼 경기 간격이 긴 승부를 치를 때와 장기간 합숙하며 3-4일 간격으로 경기를 치르는 토너먼트에서의 체력은 어떻게 달라야 하나?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강화와 보강을 못했다. 예선 때는 몸의 밸런스, 컨디션, 부상 정도를 완화시켜서 경기를 뛰게 만드는 게 주였다. 인간은 힘들 때 못 쉬게 해주면 느슨해진다. 과도한 트레이닝은 금물이다. 카타르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 때는 그 전 주말에 경기를 하고 온 선수들이 있었다. 그걸 감안해서 훈련 강도를 낮춰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으니까 마냥 쉬게 할 순 없었다. 그 판단의 지점이 내 입장에선 어려운 거다. 축구는 팀 스포츠다. 일체감이 중요하다. 특정 개인만 봐줄 순 없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팀을 우선으로 봐야 한다. (Q. 올림픽은 18명으로 엔트리가 구성된다. 체력과 부상 관리가 어느 대회보다 어려울 텐데?) 각오는 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관찰한 리스트 안에 있는 선수를 모두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본선에선 절대 다치면 안 된다. 1명의 부상이 예전과 달리 영향이 크다. 그리고 시즌 중에 차출되고 날씨도 무더워져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어지는 시기다. 그런 것을 컨트롤해 가며 선수 개인을 파악해놓아야 한다.
홍명보 감독과 이케다 세이고 코치 (사진=연합뉴스)
- 올림픽은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3년 간 달려 온 기나긴 여정의 최종 목적지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는가?
우리는 준결승 이상 올라가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쉽진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수준 높은 리그에서 뛰고 있고 객관적 실력도 더 위다. 올림픽 자체가 소집이 쉽지 않은 대회라 각 구단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본선은 벌써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불안정한 요소가 많아서 참 어렵다. 누굴 소집할 수 있는지 확신한다면 그림을 그려놓겠는데 그것도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고 나도 전력을 다해 돕겠다. 우리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이 자연히 결과로 나올 것이다.
- 마지막 질문이다. 일본도 올림픽 본선에 간다. 축구인으로서,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굉장히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신기하다. 내가 2009년 처음 홍명보호의 벤치에 들어갔던 경기가 바로 일본과의 수원컵이었다. 양국 국가가 차례로 울릴 때 내 인생에서 한번도 경험 못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입는 트레이닝복과 유니폼이 내 소속이고 정체성이다. 일본은 조국이지만 나는 한국 올림픽대표팀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는 위치다.
-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하다. 런던올림픽에서의 선전을 기원한다.
통역=조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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